장승은 마을 어귀나 길목에 세워져 오랫동안 한국인의 생활세계와 함께해 온 민속 상징물이다. 장승을 단순한 조형물이나 장식으로만 이해하면, 장승이 수행해 온 역할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장승은 ‘경계’를 표시하고, ‘신앙’을 통해 불안을 다루며, ‘공동체’의 질서를 확인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경계는 단지 공간을 나누는 선이 아니라, 안과 밖을 구분하고 안전과 규칙을 선언하는 사회적 장치다. 장승은 그 선언을 가장 눈에 띄는 형태로 만들어, 누구나 보게 하고 기억하게 했다. 또한 장승은 보이지 않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다루기 위한 신앙적 상상력이 투영된 대상이었으며, 그 상상력은 공동체가 공유할 때 문화로 굳어진다. 장승 앞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마음을 다잡고, 마을의 평안을 빌며, 낯선 이를 맞이하는 규칙을 확인해 왔다. 이 글은 장승을 경계의 관점에서 사회적 기능으로 해석하고, 신앙의 관점에서 장승이 어떤 불안을 다루는 장치였는지 설명하며,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관점에서 장승이 왜 마을 정체성의 표식이 되었는지 정리한다. 장승은 나무나 돌로 만든 조형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운 ‘보이는 약속’의 상징이다.

경계: 장승은 ‘여기부터 우리의 삶’이라고 말하는 표지다
장승이 서 있는 자리는 우연이 아니다. 장승은 대개 마을 어귀, 길이 갈라지는 지점, 혹은 외부인이 들어오는 통로에 세워졌다. 이는 장승이 경관을 꾸미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경계를 표시하는 표지였음을 보여 준다. 경계는 단지 물리적 분리의 선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경계를 통해 공동체는 ‘안’과 ‘밖’을 구분하고,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 공간인지 선언한다. 장승은 그 선언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한 장치다.
경계를 표시하는 방식은 공동체의 생존 전략과 연결된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길목에 무엇인가를 세우는 행위는 경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곳을 우리의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합의가 있어야 경계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장승은 그 합의를 돌이나 나무에 새겨 오래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장승은 길 안내의 기능도 함께 수행해 왔다. 길을 알려 주는 표지물은 단순한 편의 시설이 아니라, 공간의 질서를 만드는 장치다. 길이 분명해지면 사람들의 이동이 안정되고, 안정된 이동은 곧 생활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장승은 이렇게 경계와 안내, 질서와 안정이 한꺼번에 결합된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글은 장승을 경계의 관점에서 출발해, 신앙적 의미가 어떻게 장승에 더해졌는지, 그리고 그 결합이 공동체 문화로 어떻게 굳어졌는지까지 차례로 설명한다. 장승은 마을의 입구에 세운 조형물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규칙을 보이게 만든 문화 장치다.
신앙·공동체: 보이지 않는 불안을 다루고, 함께 지키는 질서를 세우다
장승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 중 하나는 표정이다. 장승의 과장된 표정과 굵은 조각은 단지 예술적 스타일이 아니라, 기능적 상상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장승은 보이지 않는 위험—질병, 재해, 불운, 낯선 기운—을 ‘보이게’ 만들고, 그 보이는 대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는 신앙적 장치였다. 사람들은 장승을 통해 불안을 외부화했고, 외부화된 불안은 의례와 규칙을 통해 관리될 수 있었다.
신앙은 개인의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공동체가 공유할 때 문화가 된다. 장승은 공동체가 공유한 신앙의 형태였고, 따라서 장승은 개인의 기도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상징물이 되었다. 장승 앞에서 행해지는 의례는 단지 신에게 비는 행위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우리는 함께 이 공간을 지킨다”는 약속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신앙은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장승은 ‘환대의 규칙’과도 연결된다. 경계는 배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계가 분명할수록 환대도 가능해진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열어 줄지, 어떤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장승은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곳은 이렇게 살아가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메시지는 경고이면서도 안내이며, 규칙이면서도 환대의 조건이 된다.
결국 장승은 경계·신앙·공동체가 하나로 결합된 상징이다. 장승을 세운다는 것은 나무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지켜 왔는지를 드러내는 행위다. 장승은 “우리는 여기에서 함께 산다”는 선언이자, 그 선언을 지키기 위한 문화적 장치였다.
계승의 관점: 경계·신앙·공동체의 의미를 오늘의 생활감각으로 살리기
장승을 민족문화상징으로 계승한다는 것은 장승을 전통 소품으로만 전시하지 않는 일이다. 첫째로, 경계의 관점에서 장승은 공간의 질서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 준다. 오늘날에도 공동체는 경계를 필요로 한다. 다만 그 경계는 배제보다 안전과 공존, 규칙과 존중의 형태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장승은 경계가 단지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만든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둘째로, 신앙의 관점에서 장승은 불안을 다루는 집단적 방법을 보여 준다. 현대 사회는 과학과 제도가 발달했지만, 불안은 여전히 존재한다. 장승은 불안을 상징으로 묶어 공동체가 함께 다루게 만드는 장치였고, 이는 오늘날에도 공동체가 정서적 안정과 연대감을 만드는 데 참고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장승을 이해하는 일은 과거의 신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공동체적으로 다루는 지혜를 읽는 일이다.
셋째로, 공동체의 관점에서 장승은 ‘함께 지키는 문화’를 상징한다. 장승은 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합의했기에 세워졌고, 공동체가 의미를 공유했기에 유지되었다. 장승을 계승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스스로의 공간과 규칙을 존중하며, 외부와의 관계를 성숙하게 조정하는 태도를 이어가는 일이다.
장승은 경계·신앙·공동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한국 민속의 상징이다. 나무나 돌로 만든 얼굴이지만, 그 얼굴은 공동체가 불안을 다루고 질서를 세우며 삶을 지속하려 했던 의지를 담고 있다. 장승을 오늘에 잇는 일은 그 의지를 현대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 실천하는 일이다.